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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철학/참고

우치다 타츠루, 로컬로 턴 (이숲, 2022)

 

요약

인구증가와 생산기술의 진화를 발판삼아 지속해온 성장사회는 종언을 고하고 있다. 일본의 급격한 인구감소는 성장을 견인할 수요의 감소와 혁신을 만들어낼 연구개발 역량의 저하로 이어진다. 제로 성장 시대가 도래하였음에도 계속해서 성장을 추구하는 일본 사회는 성장여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회보장제도를 해체하여 상품화하거나 기계화 및 업무과중을 통해 인건비를 절감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위기를 직감한 청년들은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의 정점인 도시를 탈출하여 지역으로 망명하고 있다.

지역의 경제모델은 도시의 그것과는 다르다. 도시의 경제원리가 성장을 추구하는 성장 모델이라면, 지역의 경제원리는 한결같음을 추구하는 정상(定常) 모델이다. 시장에서의 교환이 화폐를 매개로 하는 거래인 것과 달리 공동체 내에서는 증여와 호혜라는 방식으로 교환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교환은 GDP로 잡히지 않지만 생활경제의 실질적인 풍요를 증대한다. 시장에서의 기업이 성장을 추구하는 것과 달리 공동체에 기반한 기업은 완전고용을 추구한다. 시장에서의 경제활동이 균일화되고 균질한 것들의 유동성에 봉사하는 것과 달리, 공동체에서의 경제활동은 서로 다른 구성원(백성(百姓))들의 시민적 성숙에 봉사한다.

인구감소로 인한 제로성장은 일본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인구감소는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필연적으로 도달하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인간에게는 기거할 곳과 먹고 마실 것,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호부조의 네트워크, 교육 인프라가 필요하다. 시장과는 다른 원리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점차 늘어날 것이다.

 

 

 

감상

우치다 타츠루는 저술 활동은 물론 블로그 활동과 평론도 활발히 하는 철학자로

세상 돌아가는 모양에 대한 이런저런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인데,

돌려말하지 않는 그의 문장에는 음흉함이 없고 통찰에는 비겁함이 없어

귀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좋은 선배라고 생각한다.

 

서울을 떠나 지방에서의 삶을 고민하고 있는 중에

정확하게 이 주제에 대한 우치다 선생의 책이 나와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게으름뱅이의 마을에 대해 생각할 때

어떤 문제들이 구체적으로 떠오르고

그것을 종합한 해결책 내지는 대안으로서 게으름뱅이의 마을을 떠올렸던 것은 아니다.

삶의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정확하게 뭐가 잘못된 건지, 뭐가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의구심이

게으름뱅이의 마을이라는 아이디어를 낳은 것이다.

 

일단 하나의 아이디어가 탄생하였으나 나는 이것이 무엇이며 왜 태어났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아이디어를 알기 위한 기본적인 작업으로 다음의 세 가지 질문에 답하고자 하였다.

  1. 왜 게으름뱅이인가.
  2. 왜 마을인가. (왜 공동체인가.)
  3. 왜 지역인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의문형의 각 문장이 묻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문제를 함축하고 있는지를 먼저 이해해야 했다.

저 세 가지 질문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한 셈이다.

 

이 책에서 우치다 선생은

지방 이주 현상과 그 원인이 되는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의 종언,

'고아키나이'라는 대안적 기업정신의 소개, 공동체를 통한 인간적 삶과 시민적 성숙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간 질문에 접근도 하지 못하고 끙끙 앓던 사유 허접으로서는 중요한 힌트를 얻은 기분이다.

 

 

 

우치다 선생으로부터 얻은 힌트를 통해 세 가지 질문에 다시 접근해보자.

 

 

첫 번째 질문인 '왜 게으름뱅이인가'는

우리 사회가 주조해내는 인간상에 대한 의문과 바람직한 인간상에 대한 질문이다.

시장에서 자신의 위치와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결과 호환이 가능한 동질적이고 규격화된 인간이 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의문이 전제가 되어

여기에서 이탈하는 인간상으로서 '게으름뱅이'를 떠올렸다고 할 수 있겠다.

 

왜 하필 게으름뱅이를 떠올렸을까.

우리 사회에서는 게으름이 가장 용서받지 못하는 악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게으름뱅이에 대한 옹호라기보다는 주조된 인간상에 대한 비판이 제시되어야 한다.

게으름뱅이는 나태라는 악덕의 화신으로서의 인간상이 아니라,

거푸집을 탈출한 인간상에 대한 상징 내지는 상상으로서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어떻게 거푸집을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2번과 3번 질문과 닿아 있다.

 

참고로 나는 지난 글에서 '왜 게으름뱅이인가'에 답하고자 하는 1차 시도를 한 바 있다.

여기에서는 게으름뱅이를 단순한 상징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추구할만한 인간상 또는 상태로 제시하며 이를 위해 게으름의 의미 전복을 시도하였다.

우리 사회가 권장하는 인간상을 비판하려면

추구하는 가치규범/체계에 대한 비판을 선행해야 할 것이다.

1차 시도에서는 미진한 부분들이 많았다. 그때는 먹은 게 한병철 밖에 없었기 때문이리라.

한병철, 우치다를 비롯한 여러 선배들의 도움을 통해 생각을 좀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인 '왜 마을인가/공동체인가'는 인간적 성숙을 위한 조건과 생활문화에 대한 물음이다.

나는 막연하게 타자의 존재가 인간적 성숙의 조건이라고 생각해왔다.

우리는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성숙할 수 있으며, 때문에 타자의 공동체로서 마을을 떠올린 것이다.

한편 마을/공동체여야 하는 이유가 인간적 성숙을 위해 타자의 존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면

성숙이라는 목적을 위해 타자와의 관계를 수단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에 

2번 질문에 대한 생각은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다.

이에 대한 힌트는 존재론적 관점에서 타자의 의미를 고찰한 레비나스를 통해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 우치다는 이 책에서는 공동체에 대해 존재론적 관점이 아닌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때문에 공동체에 대한 우치다의 생각은 나의 세 번째 질문과 더 맞닿아 있는 듯하다.

 

 

세 번째 질문인 '왜 지역인가'는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접근하는 것이 힌트이다.

혼자서 생각하기로는 이 질문에 대해 경험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려고 했었다.

주거 비용으로 월급의 대부분을 지출하면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겠다는 인식,

매일 겪어야 하는 출퇴근 전쟁 등 각종 도시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보다 쾌적하고 여유로운 환경에서 살고 싶다는 열망에서 지역으로 이주하기를 바라는 것이리라고 생각하였다.

한편 생활에서 경험하는 문제들을 도시라는 공간의 특성으로 국한하여 생각했기 때문에

'생활공간이 바뀐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단순히 지금의 스트레스를 회피하려고 지역으로 도망치려는 게 아닐까?' 하는 의혹을 벗어날 수 없었고

이 때문에 생각을 더 이상 전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치다에 따르면  '탈 도시'란 '탈 시장·탈 화폐' 경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성장 중심의 경제체제는 필연적으로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을, 나아가 국민국가의 액상화(불안정해짐)를 야기한다.

마침내 제로성장의 시대가 도래하였으며, 이제 우리의 경제 체제는 '성장 모델'에서 '정상 모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어서 우치다는 대안적인 가치의 교환 방식으로서 공동체에서의 증여와 호혜의 원리를 소개한다.

 

도시와 지역에서의 삶의 방식의 차이가 단순히 공간에 국한된 차이가 아니라

근간이 되는 경제체제의 다름에서 오는 차이라고 한다면

이는 단순히 삶터를 옮기는 문제가 아니라 가치체계와 사고방식을 바꿔야 하는 문제가 된다.

'성장 모델'과 '정상 모델'이 의미하는 바, 작동 원리에 대해 더 알기 위해서는 경제체제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겠다.

여기에 대하여 성장 모델의 사회에서 일평생을 살아온 내가

정상 모델의 사회에 적응하고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자기 몫을 해내며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지역이 실제로 정상 모델의 사회인지,

증여와 호혜의 방식으로 작동하는 사회인지에 대해서도 확인해야 하겠다.

자본주의라는 체제는 도시에서 정점을 이룬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지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텐데.

실제로 지역에서 증여와 호혜의 방식이 작동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지역 공동체를 경험해봐야 할 것이다.

그게 가능할까. 그러려면 이미 나는 그 공동체의 구성원이어야 하지 않나.

여기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보자.

 

 

 

우치다 선생의 글을 통해 게으름뱅이의 마을을 구상할 때 얻은 힌트들을 요약해보자면,

1. 왜 게으름뱅이인가

  - 현대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규범과 체계, 인간상을 비판적으로 이해할 것.

  - 대안적 가치규범과 인간상을 제시할 것.

2. 왜 마을인가

  - 존재론적 관점에서 타자의 의미를 밝힐 것.

  - 타자와의 관계를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삼을 수 있는 원리를 밝힐 것.

3. 왜 지역인가

  - 경제체제를 공부할 것.

  - 대안적인 모델을 탐색할 것.

  - 지역 공동체를 경험해볼 것.

 

 

 

 

더 읽을 거리

칼 맑스, 자본론

백승욱, 자본주의 역사 강의

J K 깁슨-그레엄,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

 

미셸 푸코, 비판이란 무엇인가 / 자기수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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