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있는 집에 대한 로망이란!!
서울을 떠나고 싶은 이유 중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어쩌면 이 마당에 대한 갈망 때문인지도 모른다.
더 좋은 삶, 이를 위한 공동체의 모습 등등은 모두 서울에서도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마당은!!
가축을 사육하고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마당 있는 집을 서울에서 구하는 것은 나의 이번 삶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서울을 떠날 수밖에.
포인트 1. 닭장
마당 있는 집으로 가고 싶다는 욕망의 본질적인 원인은 음식물쓰레기이다.
공동주택에서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은 아주 끔찍하다.
각 가정에서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여 내놓는 일도 꺼려지는 일이지만
그것을 도시라는 시스템이 처리하는 방식도 끔찍한 일이다.
봉투에 담겨 내놓은 음쓰는 봉지 채로 쓰레기차에 실려간 뒤 어떻게 처리되나?
처리를 위해서는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한 데 모아 처리해야 하지 않나?
이 지점이 너무나 끔찍.
음쓰가 원래부터 끔찍한 것은 아니다.
식재료의 부산물이고, 원래는 우리 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제때 처리되지 않은 바람에 부패하며 점점 다루기 싫은 것이 될 뿐이지.
음쓰도 요리 즉시 신선한 상태에서 최종처리까지 완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음쓰가 닭장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닭은 엄청난 양의 식재료 부산물을 먹을 수 있다고 들었다.
식재료 부산물이란 감자 껍질이나 양상추의 겉잎처럼 식재료를 손질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말한다.
이런 것들은 대체로 수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쉽게 썩고 부패하는 과정에서 침출수를 발생시킨다.
반면 간이 되지 않은 식재료의 신선한 부산물을 닭의 먹이로 활용한다면 많은 양의 음식물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으니 닭들의 건강에도 좋은 일이다.
닭들은 식재료 부산물을 처리해줄 뿐만 아니라 알도 낳는다.
비교적 건강한 환경에서 자란 닭이 낳은 알을 유통과정 없이 당일 먹을 수 있는 것!
유정란은 먹지 않고 닭이 품게 놓아두면 병아리가 된다. 병아리는 닭이 되고 알을 낳고 다시 병아리를 까고!
자연과 유리된 식재료 부산물은 끔찍한 음쓰가 될 뿐이지만,
이것이 자연의 순환 속에 들어오면 새로운 생명이 된다.
이거야말로 풍요 아닌가.
풍요로운 순환의 공간인 닭장. 이것이 우리 집 마당에 있었으면 좋겠다.
포인트 2. 텃밭
나는 음식물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렁이를 키웠던 적이 있다.
시중에는 지렁이 키우기 키트 같은 것을 판매하는데, 사육 방법도 상세히 안내되어 있다.
기대에 비해 지렁이가 식재료 부산물을 잘 처리하는 덕분에 음식물 쓰레기 양이 줄기도 했고
참외나 토마토의 씨앗이 지렁이 사육상자에서 발아해 그것을 잘 키워 화분으로 옮겨 심는 것도 재미있었고
분변토를 상자텃밭에 옮겨 작물을 키우는 데에도 도움이 되어 아주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러나 사육상자라는 제한적인 환경은 지렁이의 서식에 아무래도 좋지 않은 환경이었을 것이고,
사육자로서 나 역시도 미흡한 점이 많았을 것이다.
좁은 사육상자의 환경 상 먹이 보급에 따라 상자 내 습도가 변했고
온습도 조절에 실패해 지렁이가 폐사하기라도 하면 나는 관리 미흡으로 생명을 몰살시켰다는 자책에 시달렸다.
이제 상자에서 지렁이를 기르는 것에는 만족할 수 없다.
내가 온습도를 섬세하게 컨트롤 하지 않더라도 지렁이들이 몸을 피하고 이동할 수 있는 거대한 사육상자,
Mother Earth에서 야생의 지렁이와 살고 싶다.
텃밭은 지렁이를 통해 음식물 쓰레기를 수박과 참외, 토마토와 배추로 전환하는 마법 같은 풍요의 공간이다.
닭에게는 신선한 야채만 먹일 수 있지만 지렁이에게는 다소간 상한 음식도 먹일 수 있다! (염분은 제거해야 한다.)
지렁이는 썩은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토양에 영양을 더해준다. 그야말로 신의 동물!
아래는 웜타워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는 영상이다.
유투브에 웜타워 worm tower라고 검색하면 훨씬 많은 영상을 볼 수 있다.
음식물쓰레기와 핑크핑크 초크초크 말랑말랑한 지렁이가 나오니, 보고 싶지 않은 분들은 주의하시길.
일단 마무리 지으며.
집 외부 공간에 대한 상상만으로 이렇게 길게 쓰게 될 줄은 몰랐네.
그런 것 치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음식물쓰레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음식물쓰레기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일과 때와 가치에 대한 이야기인 듯하다.
음식물쓰레기는 인간쓰레기에 이어 역겨운 존재 2위에 랭크될 만한 존재이다.
그러나 이는 적절한 때에 적절한 처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뿐,
적절한 때 적절한 방식으로 처리되기만 한다면 원래 그것이 갖고 있는 가치가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제때 제대로 처리한다면 배춧잎은 땅에 영양을 닭에게 건강을 줄 수 있지만,
때를 놓쳐 비닐봉지 안에서 썩고 문드러져 슬러지가 되어버린다면
땅에는 오염을 닭에게는 질병을 가져다 줄 것이다.
존재가 갖고 있는 역량과 가치는 제한적이지 않고,
현재의 위치를 재배치함으로써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발현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때의 역량과 가치라 함은 실용적인 의미에서 쓸모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어떻게 사는 게 더 좋은 삶이냐 하고 묻는다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역량을 더 잘 발휘할 수 있도록 관계 맺는 것과 관련될 것이다.
땅에는 영양을, 닭에게는 건강을.
남은 이야기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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